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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성도 고난의 의의Ⅱ-성화 (욥1:1-222)
작성일 :  2021-09-16 14:14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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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고난의 의의(意義)-성화 (42:1-6)

 

욥에게 죽음에 이르는 극한 고난의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그 많은 재산과 종들이 절단이 나버렸습니다. 그 몸은 살았으나 오히려 죽은이 만 못한 고통에 싸여있었습니다. 그로인한 아내의 원망, 친구들의 조소, 종들과 여러 객들과 그리고 동포들에게까지 그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더할 수 없는 온갖 고난에 휩싸여 있는 욥의 모습이었습니다. 의인 욥의 고난은 우연이었을까? 돌발적 사건이었나?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아닙니다. 우리는 욥에게 임한 고난의 의의(意義)를 성경에서 그 대답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 그것은 절대하신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체험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1:20-21).

하나님 자신의 자존적(自存的) 영광, 그 영예로운 속성과 완전성,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그의 전능, 결코 꺾일 수 없는 그의 공의등 세상 어느 무엇으로 부터도 도전 받을 수 없는 그의 엄위하신 주권을 체험케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 성화적(聖化的) 삶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5,6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욥의 이러한 말은 그가 당했던 고난의 의의를 확실히 대답해 주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말은 부요했을 때의 신앙생활에서 보다 환난 중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실감 있게 체험했다는 뜻으로 고난은 욥의 신앙을 더욱 성장시킴에 필요한 성화적 수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성화적 내용들은 무엇인가? 1. 죽음의 실존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욥은 환난을 당할 때 꼭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 경우 불신자들은 죽음을 운명으로 돌리고 싫지마는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의 죽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결코 자신의 목숨은 자신에 의해서 끊어지거나 누구에 의해서도 주장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13:5)라고 했고, 그래서 그는 죽는 것을 사모한다고 했습니다(6:8).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고 위로 받기를 바란다고 했던 것입니다(6:10). 이러한 욥의 심리는 염세적이거나 자기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예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한번 죽기로 작정된 마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해도 그 마음은 늘 안정되어 있습니다(57:7). 2. 내세소망의 신앙입니다. 욥은 극한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를 데려가실 것을 기다렸습니다(14:1-6). 이는 그가 하나님의 세계, 곧 내세(天國)을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9:25-27). 그는 죽은 후 그 영혼의 육체 밖에서 그의 구속자를 볼 것이라는 확실한 내세신앙이 있었습니다. 3. 기도의 인내였습니다. 욥은 그의 기대대로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여러 달째 곤고의 밤들이 계속된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부르짖었습니다(7). 그는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린다(16:20)고 하면서 그 눈물 속에 올리는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했습니다(16:7). 이렇듯 긴 기간의 고통 속에서도 욥은 인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인내를 기도와 함께 감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5:11). 4. 말씀의 은총입니다. 욥은 그러할지라도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라(6:10)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의 태풍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또 받게 하는 은총의 방편이었습니다. 욥기 38장에서 41장까지는 고난의 태풍 속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가 몸담고 사는 우주 만유의 그 생성과 그 움직임과 그 목적과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들려주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욥을 고난의 태풍 가운데 두시고 위대하신 당신의 주권적 창조와 통치와 섭리를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고난 속에서 주의 말씀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위대하신 주님의 말씀을 받고, 듣고, 깨닫고, 믿는 고도의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시편 성도는 고백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고난을 통하여 주의 말씀을 깨닫고 지키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119:67-71). 5. 종의 신분을 확인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허락하신 환난의 폭풍을 정돈하실 무렵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괴롭혔던 세친구에게 노하시면서 저들에게 욥의 신분을 다시 인식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가리켜 내 종 욥이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이 있기 전에도 사탄 앞에서 욥을 소개할 때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한바 있습니다(1:8). 그렇다면 그는 순경(順境) 중에도 하나님의 종이었고 환난 중에도, 환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친히 즐겨 쓰시는 사람들, 좋아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하시는 일종의 애칭과도 같습니다. 욥은 극한 환난을 겪었으나 오히려 여호와의 종이라는 빛나고 영예로운 이름을 유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환난의 태풍을 가지고 욥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결국 욥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왜 의인들에게 고난이 있었는가를 보여주시는 진리였습니다. 말하자면 고난의 의의(意義), 곧 욥으로 하여금 고도의 영적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기방편이었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죽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후에 있는 내세신앙이 더 뜨거워지고 확실해졌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정결한 기도와 인내를 배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 꿀과 송이꿀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미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 그가 여호와의 종인 자신의 영예로운 신분이 더 빛나게 되었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신학을 배우는 학교가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성장을 맛보게 하는 성화신학의 요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진리를 따라갔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이같은 고난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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